청와대 ‘연쇄살인 홍보지침’ 논란 확산
경찰청에 “용산사태 대응위한 절호의 기회”
청 “공식적으로 보낸 바는 없다” 답변 애매
강희철 기자 황준범 기자 길윤형 기자
 
 

청와대 홍보기획관실 행정관이 ‘용산 사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홍보하라’는 내용의 전자우편(이메일) 지침을 경찰청에 보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청와대의 부적절한 여론호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12일 청와대 이아무개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 앞으로 보낸 이메일이라며 “용산 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고 적힌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 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란다”고 적혀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기자 브리핑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비공식적 또는 개인적으로 보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고 “그것을 포함해 경위를 알아보고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적극적으로 알리라는 (취지로), 홍보하시는 분들이 홍보하는 분들한테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답변은 청와대 차원의 조직적 개입 여부와 별개로, 최소한 홍보기획관실 행정관 차원에서 전자우편 지침을 보낸 사실 자체는 강력히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청와대는 이날 오후 대변인실 공식 입장을 통해 “거듭 말씀드리지만 청와대는 민주당 김유정 의원의 폭로와 같은 지침이나 공문을 경찰청에 내린 바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문제의 전자우편 수신자라고 주장한 박병국 경찰청 홍보담당관은 “청와대로부터 군포 연쇄살인 사건 홍보와 관련해 공문이나 전자우편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사건 홍보는 경찰의 일상적인 홍보 지침에 따라 이뤄진 것이며, 청와대로부터 다른 지침을 받은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이날 청와대의 조직적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행정관 개인이 회의에 보고도 않은 채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며 “청와대 입장 변화를 지켜보면서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민석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국민의 죽음을 또다른 죽음으로 덮으려 한, 청와대의 ‘살인마 띄우기’는 단죄되어야 한다”며 “국회는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338447.html

강희철 황준범 길윤형 기자 jaybee@hani.co.kr

 

군포 연쇄살인 취재에 유난히 친절했던 경찰
,피의자 마스크 벗겨주고 식사·기자실 편의제공도
안양사건과 태도 대비적…경찰 “언론사 요청 따른것”
김기성 기자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여느 때와 달리, 언론에 유난히 친절(?)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연쇄살인 피의자 강아무개(39)씨를 검거한 지 하루 만인 지난달 25일 그를 기자들 앞에 세웠다. 강씨는 이때만 해도 군포 여대생을 살해한 혐의만 인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 수사본부장은 강씨의 마스크를 벗길 것을 지시해 ‘흉악범’의 얼굴을 사실상 공개했다. 경기 안양에서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 두 명을 유괴·살해한 뒤 주검을 끔찍하게 훼손했다가 지난해 3월 붙잡힌 정아무개(40)씨 사건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당시 여러 언론들이 흉악범 얼굴 공개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피의자 인권’을 내세우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 스스로 채 1년도 안 돼 말을 뒤집은 것이다.

 

또 경찰은 지난 3일 “강씨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책으로 내 아들이 인세라도 받게 하겠다는 특별한 진술을 했다”며 “자식에 대한 애정 표현으로 보인다”고 강씨의 심경까지 흘렸다. 수사 설명회 때 준비한 자료나 읽고 짧은 문답으로 끝내던 경찰의 평소 태도와는 대조적이었다. 이 때문에 취재기자들은 ‘군침’이 도는 내용이라면서도 뒷얘기를 풀어준 ‘호의’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경찰은 강씨 조사를 위해 프로파일러(범죄심리 분석관)와 함께 피의자의 마음을 어르는 ‘케어(care)팀’도 동원한다고 언론에 밝혔다. 경찰은 그동안 각종 수사에서 이들의 존재를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이번엔 각종 매체에 이들의 출연을 주선해, ‘흥미진진한’ 생활과 수사기법까지 알려지도록 했다.

 

게다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구실을 한 것은 형사들이 현장에서 찾아낸 증거물의 유전자 감식 결과와 강씨의 자백이었는데도, ‘프로파일러의 심리분석 결과’라는 말을 써가며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엮은 보도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밖에 경찰은 현장 검증에 따라다니던 기자 100여명 등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가 하면, 널찍한 회의실을 기자실로 내주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이와 달리 안양 초등생 사건 때는 경찰이 취재에 협조하지 않아 기자들이 경찰서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보름 가까이 기사를 써야만 했다.

 

이에 대해 경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중대한 사건이어서 취재진에게 신속하게 자료 등을 제공했다”며 “프로파일러나 강씨 신문 형사 등을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주선한 것은 언론사들의 잇단 요청에 따른 것이지 어떤 의도나 지시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8443.html

수원/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 ‘용산참사 여론호도’ 불끄려다 되레 불붙인 셈
▶ 군포 연쇄살인 취재에 유난히 친절했던 경찰
▶원세훈·현인택 임명 강행, 인사치레 청문회?
▶ 미, 북한 ‘대포동 2호’ 발사 움직임 거듭 경고
▶ OBS 노조 “낙하산 철회” 투쟁 돌입
▶ 돈은 안 도는데…금리 1% 시대 눈앞
▶ 특목고 매달리는 고대 3등 콤플렉스?

 

 

곤혹스런 청와대 “홍보하는 분끼리 적극 알려라 한 것…”

청와대발 여론호도’ 문건 공개 전말
4일 의혹 입수, “제보” 확인에 국정원·경찰 허둥
11일 국회질문, ‘문건’ 묻자 한총리 “메일 알아보겠다”
11일 밤, 메일 발신·수신처·내용 드러나…청와대 당혹
 
 

 

청와대 ‘홍보지침’ 파문은 지난 4일 김유정 민주당 의원실에 울린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다.

김 의원 쪽이 “대단히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전한 제보자는 “청와대가 경찰청에 전한 지시”라며 팩스 한 장을 밀어넣었다.
팩스에선 용산 참사 등으로 생긴 부정적 여론의 물길을 틀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 내용을 적극 홍보하라”는 뜻밖의 내용들이 까맣게 찍혀 들어왔다.
 

» 김유정 민주당 의원(화면 오른쪽)이 지난 11일 국회 본회장에서 긴급 현안질의를 통해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설 연휴를 전후해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경찰 홍보담당관실로 ‘용산 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시키려는 반정부 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문건을 보냈다는 제보가 있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 의원은 사실일까 의구심을 품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제보자가 원본이나 사본을 보내준 게 아니라 원본 내용을 타이핑해 팩스로 보낸 것이어서 무책임한 야당의 의혹제기가 될까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 쪽은 확인에 나섰다.

그런데 경찰과 국가정보원의 반응이 석연치 않았다.

김 의원 쪽은 “국회 긴급현안질문을 위해 경찰청 홍보담당관실에 자료를 4일 오후 6시까지 요청했는데 잘 주지 않았다”며 “그러다 6일께 단도직입적으로 ‘그럼 청와대에서 보낸 목록만 가져오라’고 했더니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갑자기 경찰과 국정원이 예민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가 김 의원에게 직접 전화하거나, 경찰 관계자가 의원실로 찾아와 “문건을 확보한 거냐” “이 내용을 (국무총리 등에게) 질의할 거냐”며 김 의원 쪽의 분위기를 엿보느라 바빠진 것이다.

 

김 의원은 “긴급현안질문 날짜가 가까이 오자 한 이틀 정도 경찰청 홍보담당관실쪽 연락이 되지 않다가 현안질문 전날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보내온 문건은 없다’는 짧은 답변만 왔다”고 말했다.

 

여전히 ‘긴가민가’하던 김 의원에게 ‘뭔가 있다’는 심증을 굳혀준 것은 1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나온 한승수 총리의 답변이었다.

한 총리는 김 의원의 물음에 “들은 바가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청와대에서 무슨 메일이 갔는지 뭐가 갔는지는 모르지만 알아보도록 하겠다”며 묻지도 않은 ‘메일’을 언급했다.

김 의원은 ‘문건’이라고 말했는데 한 총리가 도리어 ‘메일’로 고쳐 답한 것이다.

김 의원은 “한 총리가 이메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봐서 (관련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의혹제기와 함께 이날 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가 문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하자, 청와대는 당혹스러워 했다.

당사자인 이아무개 행정관과 해당 비서관(김철균 국민소통비서관)은 이날 언론의 전화를 피했다.

그런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떳떳이 나서서 관련 보도 내용 등을 정면으로 부정하면 되는데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의 확인 요청에 “공식적으로는 (문건을) 보낸 일이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행정관 개인이 사적으로 전자우편을 보낸 일도 없느냐’는 물음에는 “그걸 포함해 경위를 알아보고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홍보하는 분이 홍보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알려라’고 얘기한 거니까…”라고 말했다.

이런 내용이 전달된 가능성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분위기가 엿보이는 발언인 셈이다.

 

논란이 지속되자 청와대는 대변인실 명의로 “김 의원의 폭로와 같은 지침이나 공문을 경찰청에 내린 바 없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했다는 ‘청와대 공문’은 청와대가 사용하는 공문이나 이메일 양식과도 다르다”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냈다.

공식적으로 공문을 내려보낸 적이 없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날 오후 늦게까지도 ‘행정관이 사적으로 전자우편을 보냈는지를 포함한 경위를 알아본 결과’를 속시원히 발표하지 않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8554.html

송호진 황준범 기자 dmzsong@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 청와대 곤혹 “홍보하는 분끼리 적극 알려라 한 것…”
▶청와대선 보냈는데 경찰은 “안받았다”
▶빈대 수출국가? 머릿니 수입국가?
▶ ‘뱅글 엉덩이’를 남기고 떠난 사나이
▶삼성 이재용씨 부부 수천억대 이혼 소송
▶이 대통령 “나 자신 한때 철거민”
▶OBS 노조 “MB 낙하산 철회” 투쟁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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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도 표절의혹
[오바마 시대와 한국]⑫킹 목사,찬사 못지않게 부정적인 평가도
2009년 02월 10일 (화) 09:24:43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 2세는 1929년 1월 15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마가렛 미첼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수십 년이 넘도록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요 무대가 바로 그 도시로서, 인종 차별이 아주 심한 곳이었다.

그의 아버지 마틴 루터 킹 1세는 침례교 목사였다. 열다섯 살 때 모어하우스칼리지에 입학해서 사회학 학사학위를 받은 킹 2세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체스터에 있는 크로저신학교를 마치고 1955년 보스턴대학교에서 조직신학 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킹은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어서 여기에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다수 미국인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으므로 그 이력을 다시 짚어보는 것이 좋겠다. 특히 버락 오바마와 연관해서 킹을 논할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흑인으로선 특출한 엘리트 코스 밟아

킹은 오바마처럼 화려한 학력은 아니지만 1940년대부터 50년대 중반까지 공부를 한 흑인으로서는 특출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1983년 11월 2일부터 더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킹을 기념하는 공휴일을 제정한다는 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1986년 1월 20일에 공식적으로 시작된 ‘마틴 루터 킹 2세의 날’은 해마다 킹의 생일에 가까운 1월 셋째 월요일(2009년에는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1월 19일)에 지켜진다. 미국 시민으로서 국가적 공휴일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킹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명 ‘조지 워싱턴의 날’이 있지만, 공식 이름은 ‘대통령들의 날’이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날’은 이탈리아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미국의 주요 공휴일인 현충일, 독립기념일, 노동절, 재향군인의 날,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그 어디에도 개인의 이름은 없다. 이렇게 보면 미국에서 킹은 ‘영원하고 위대하다.’

그런데 현대 미국 흑인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인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 2세에 관한 자료들, 특히 인터넷에 최근 올려져서 반론을 거의 받지 않는 정보들을 보면, 말콤에 대해서는 도덕성을 문제삼는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킹 목사, 생시와 사후에 받은 훈장과 명예는 산더미

킹은 정반대이다. 그러나 그가 생시와 사후에 받은 상들과 훈장과 명예는 말콤에 비하면 하늘처럼 높고 크다. 킹에 대한 미국과 세계의 존경과 추앙은 그 목록을 일일이 적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대표적인 것들만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미국과 국외 대학들에서  최소한 50개의 명예박사학위
 2) 1964년 노벨평화상
 3) 1965년 미국유태인위원회의 ‘아메리카 자유메달’
 4) 1963년 교황 요한 23세가 수여한 ‘파쳄 인 테리스’ 상
 5) 킹의 사후인 1971년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연설 앨범’ 부문 상

이밖에도 킹은 1976년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서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2004년에 킹과 그의 부인은 미국의회 금장(Gold Medal)을 탔다. 킹은 ‘20세기에 가장 존경받는 인물’(갤럽 선정)에서는 2위였고, 시사주간지 <타임>의 여론조사에서는 ‘20세기의 인물’ 중 6위였다. 케이블텔레비전인 <디스커버리>와 인터넷 전문의 AOL이 ‘가장 위대한 미국인’을 뽑은 콘테스트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730개 도시가 킹의 이름을 딴 거리를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성공회와 루터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이런 킹을 왜 ‘오바마시대’에 다시 조명해야 하는지를 지금부터 여러 사실들을 바탕으로 알아보자. 내가 이번에 킹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면서 놀란 까닭은 부정적인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살아 생전과 사후에도 킹 괴롭힌 것은 표절

무엇보다도 먼저, 킹이 살아 있던 때에도 사후에도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표절’이었다. 다소 길지만 <위키피디아>의 ‘마틴 루터 킹 2세의 저작권 문제들’ 중 주요 부분을 여기 옮겨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겠다.

마틴 루터 킹 박사의 논문들이 그의 부인 코레타 스콧 킹에  의해 스탠포드대학교의 ‘킹 논문 프로젝트’에 기증되었다. 1980년대 말, 그 논문들을  분류해서 목록을 작성하던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킹의 보스턴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인 ‘폴 틸리히와 넬슨 위먼의 신 개념 비교’가 보스턴대에서 3년 전에 다른 학생(잭 부저)이 쓴 학위논문에 담긴 많은 부문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
킹이 조직신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보스턴대의 조사 결과, 킹은 그 주제로 글을 쓴 여러 저자들의 논문에서 학위논문 주제의 주요 부분들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킹 논문 프로젝트’에서 킹의 초년기 삶에 관한 연구를 지도한 민권운동역사가 랠프 E. 루커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주된 특성과 법리’라는 킹의 논문은 거의 전적으로 제2의 전거에서 베낀 것이었다.

주요 신문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한 해 넘게 보도를 하지 않았다. <위키피디아>의 글은 이렇게 계속된다.

이 사건은 1989년 12월 3일자 (영국의) <데일리 텔리그래프>에 프랭크  존슨의 기명기사로 보도되었는데, 제목은 ‘마틴 루터 킹-그는 표절꾼이었는가?’였다. 그 다음 1990년 11월 9일,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이 ‘킹 연구자들, 실망스럽게도 골치 아픈 패턴을 발견하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보스턴 글로브>와 <뉴욕 타임스>를 포함한 다른 신문들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했다. 많은 신문 사설들은  킹이 그런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위대한 사람이라면서 그를 옹호했다. (···)
보스턴대는 킹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지만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여전히 학문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서 학위를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도 표절 의혹

여기서 독자들은 무엇을 연상할까? 바로 우리나라에서 근래 몇 해 동안에 벌어진 일들일 것이다. 특히 정치인, 고위관리, 학자들이 표절이 발각되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총장이 되지 못한 사건들 말이다.
또 충격적인 사실은 킹의 그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의 일부와 그 형식이 표절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의 마무리 구절이 아치발드 2세가 195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한 연설과 부분적으로 비슷하다는 점이다. 두 연설 모두 새뮤얼 프랜시스 스미스의 인기있는 애국송가인   ‘나의 조국은 당신의 것입니다’의 첫 절을 반복하는 것으로 끝나며, 두 연설   모두 여러 산들 중 하나의 이름을 들면서 “자유여 울려 퍼져라”라고 노래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인용하고 보니 마틴 루터 킹의 이미지에 치명적 손상을 가하는 정보들을 소개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쩌랴. 그의 표절 또는 저작권 침해가 이것들로 끝나지 않으니 말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마틴 루터 킹 2세의 표절 페이지’(Martin Luther King Jr's Plagiarism page)가 나온다. 아직도 보완중이라는 이 페이지에는 킹의 ‘표절 조사 연대기’가 실려 있다.

인터넷엔 '마틴 루터 킹 2세의 표절 페이지'도 나와

대학 시절에 쓴 에세이들, 박사학위 논문, 저서들, 설교와 연설과 잡문으로 분류된 내용들이다. 이 페이지 작성자는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캐나다의 브리티시콜럼비아대학교가 표절 방지 대책을 세우면서 킹이 완전히 또는 거의 완전히 다른 사람의 저작을 대학 시절 논문에  도용한 것을 가장 심각한 표절의 예로 들었다고 소개한다.

자, 이런 사실들 중 다수가 사실로 입증되었다면(일부가 혐의에 불과하더라도) 킹이 생시와 사후에 받은 그 수두룩한 훈장과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인’ 칭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킹은 표절 말고도 사생활이 스캔들로 얼룩져 있다는 비난을 자주 받았다. 그런 공격들 중에는 킹을 도청하거나 미행한 FBI 요원들이 언론에 제보한 것도 있고 킹의 측근으로 일하던 사람들이 목격했다고 주장한 것들도 있지만, 그 내용이 너무 끔찍해서 여기에 열거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킹이 명백히 표절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극우 보수세력의 최상층부에 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 2세의 날’ 제정에 흔쾌히 동의했으며, 비슷한 성향의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 다수가 법안에 찬성했을까? 그것은 철저히 정치적 계산의 결과였다.

흑인들의 우상이자 미국 시민으로서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 킹을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하는 기념일을 정하고 영원히 기리자는 법안에 반대하면, 유권자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흑인들의 표를 거의 잃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민주당이 그런 법 제정에 반대한다면 전통적 지지층인 흑인들이 등을 돌릴 것이 분명했다.

사생활 문란 비난도 자주 받은 킹…레이건 대통령이 킹의 날 제정 찬성한 이유는 뭘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크게 성장한 민권운동의 ‘대부’인 킹을 부정하면 많은 백인들의 지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걱정도 컸을 것이다. 레이건도 아버지 부시도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도 하나가 되어, 킹의 표절이나 ‘문란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사생활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킹의 날’ 선포에 적극 찬동한 것은 그런 계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틴 루터 킹 2세를 미국의 우상(icon)으로 법제화하는 데 격렬히 반대한 이들은 제시 헬름스(1921~2008, 노스캐롤라이나주 정치인으로 1973년부터 2003년까지 연방 상원의원. 보수세력의 대표적 인물)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 소수였다. 헬름스는 “공산주의자들과 내통한 데다 부도덕한 성직자인 킹을 위한 기념일을 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상원이 법안을 승인하는 것을 막으려고 16일 동안 의사진행 방해(filibuster)를 했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의원들의 압도적 지지에 밀려버렸다.

글쓴이 / 김종철

-전 동아일보사 기자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전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
-현 재능대학교 초빙교수
- 평론으로 <상업주의소설론> 등, 저서로 <저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1992)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1995), 역서로 <말콤 엑스>(공역,1978) <산업혁명사><프랑스혁명사>(1982) <인도의 발견> 등


최초입력 : 2009-02-10 09:24:43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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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1년만에 이혼소송 맞은  이재용, 부인 임세령은 왜?


12일 오후 이 건희전회장이 두통으로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에 입원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전해지자 삼성 측은 이 회장의 내원은 건강검진을 위한 것이라며, 이 전 회장의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건희 회장의 입원 소식이 전해진지 얼마 안돼 장남인 이재용(41)  삼성전자 전무가 부인인 임세령(32) 씨에게 이혼소송을 청구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삼성그룹가[家]가 흔들리고 있다.

 

이 건희(67)전회장은 지난해 경영 일선 퇴진에 이어 곧 이어질 삼성 특검 관련 대법원 재판도 남겨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삼성가[家]에 악재가 겹치고 있는 것이다.

 

삼성 측은 이 전 회장과 이혼 소송은 우연의 일치라며 이혼소송과 입원의 상관관계를 부인하지만 시간적인 연관관계나 이건희전회장의 언론회피 스타일을 감안하면 이 전 회장이 충격으로 입원했다는 소문이 힘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이건희 전회장은 지난해 특검 등으로 11월 선친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21주기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재용(41)  삼성전자 전무와 임세령(32) 부부는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부인인 임세령씨가 남편인 이재용을 상대로 이혼 및 자녀들에 대한 양육권과 10억원의 위자료, 그리고 5000억원 상당의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서울가정법원에 냈다고 한다.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9월11일 현재 이 전무의 재산은 1조187억원이었다.
또 같은 사이트가 지난해 6월말 조사해 공개한 비상장 회사 주식 보유 현황에 따르면 이 전무는 삼성에버랜드 25.10%, 삼성SDS 9.14%, 삼성투자신탁운용 7.72%, 삼성네트웍스 7.64%, 서울통신기술 46.06%, 가치네트 36.69% 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재용 전무가 보유한 삼성 계열사 주식은 비상장사를 포함하고 있어 정확한 가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1조원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전망이다.
다시 말해 임씨는 이전무의 재산 가운데 절반을 청구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임씨의 재산분할 청구는 국내 최대 규모로 기록될 전망이다.


통상 일반인들의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은 결혼이후 형성된 재산의 50%까지 이지만 재벌가의 경우 20%의 재산분할 청구소송이 일반화해 있다고 한다.

 

임씨가 이혼소송을 제기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결혼 후 임씨는 외부활동 없이 내조에만 전념해 왔다고 하는데 갑작스런 이혼 청구의 배경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삼성으로서는 이재용 전무의 경영 승계와 아울러 이후 혈연에 따른 경영 승계 문제 역시 향후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한편, 삼성과 대상 간의 혼사와 파경이른 배경 역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998년 6월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정원에서 영남 출신 기업과 호남 출신 기업간의 결합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결혼했었다.

 

임씨는 임창옥(60)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로 당시 이대 중퇴까지 하면서 이재용과 결혼했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삼성과 대상의 혼사인데다 한때 ‘미풍’과 ‘미원’으로 조미료 전쟁을 벌였던 기업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에서 재계는 물론 세간의 화제가 됐는데 고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 제일제당은 대상그룹의 조미료 브랜드 '미원'을 넘기위해 '미풍'과 '다시다'를 출시하며 경쟁을 벌이는 등 양사의 경쟁이 치열했었다.

고 이병철 선대회장은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은 세 가지 있는데 자식과 골프, 미원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지역적 차이와 조미료 분야에서 경쟁관계였던 양가의 혼사는 당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이재용 부부가 11년만에 이혼소송으로 치닫으며 결국 양측 재벌가의 관계도 파경을 맞을 전망이다.


이번 이혼소송에 대해 임 씨의 변호인은 “소송을 낸 사실은 맞다. 하지만 가사 소송의 성격상 소송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고 삼성 관계자 역시 "이 전무의 부인이 이혼소송을 낸 것은 사실이지만 소송을 제기한 이유와 내용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개인사인만큼 회사 차원에서 이를 언급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전했다.

삼성 측은 개인사인 만큼 회사 차원의 언급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가정법원은 이 사건을 가사4부에 배당해 심리중이어서 이들 부부는 조만간 법원에서 대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무는 지난 6일 애플 등 주요 거래선 경영자와의 면담 등을 위해 출국, 현재 미국에 체류중이고 부인 임씨는 연초부터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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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암살의 위험 이겨내야
[오바마 시대와 한국] ⑩음모설 도는 말콤 엑스의 죽음
2009년 02월 06일 (금) 19:16:31 김종철 언론인 ( media@mediatoday.co.kr)

오바마에 비하면 말콤 엑스는, 어머니가 백인의 강간으로 태어난 ‘백인’이었다는 사실 말고는 철저히 흑인의 정체성을 가졌고, 흑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이었다.
말콤은  중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8학년(우리나라의 중학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해버렸다. 어느날 백인인 영어선생과 나눈 대화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말콤, 너도 장래 직업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한 번 생각해본 적이 있니?”
사실 나는 생각도 안 해보았었다. 그런데 왜 그런 대답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네, 생각해봤습니다, 선생님. 변호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 당시 랜싱에는 분명 흑인 변호사가-의사도 물론-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내가 그런 야망을 품도록 인상을 심어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실제로 확실히 아는 것은 변호사가 나처럼 접시를 닦지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 말콤 엑스.  
 
오스트로우스키씨는 놀란 것 같았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더니, 두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가서 깍지를 꼈다. 그는 어렴풋이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말콤, 인생에서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건 현실적인 자세다. 내 말을 오해하지는 마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너를 좋아한다는 건 너도 알 거야.  하지만 넌 깜둥이라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알아야 해. 너는 네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너는 물건 만드는 손재주가 좋지. 모두들 목수 솜씨를 높이 쳐준다. 왜 목수일을 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니? 사람들이 인간적으로는 너를 좋아하니까 일거리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거야.” (<말콤 엑스> 상권, 75쪽).

이 짧은 대화가 말콤 엑스의 정규교육을 끝내버리는 ‘도끼질’이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어머니는 인사불성 상태로 병원에 갇혀 살고, 남매들은 풍비박산이 된 채, 소년원 생활을 하던 그는 8학년이 끝나는 날  학교를 그만두고 이복누나인 엘라가 사는 동부 매사추세츠의 보스턴으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탄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보스턴에서 말콤이 구한 첫 직업은 나이트클럽의 구두닦이였다.  그는 ‘밤의 세계’에 살면서 출세한 흑인들이 백인 흉내내기를 하는 것을 날마다 보면서 그것을 따라한다. 콩크’(conk-곱슬머리를 약물로 풀어 백인처럼 보이게 하는 것)가 그 대표적인 보기였다. 그는 보스턴과 뉴욕을 오가는 열차에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접시닦이도 하다가 27세 때인 1943년에 뉴욕시의 할렘으로 ‘진출’한다. 할렘은 세계 최대 도시인 뉴욕의 흑인 빈민가로서 범죄와 타락의 소굴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는 거기서 밀매, 도박, 사기와 공갈, 강도, 뚜쟁이 같은 ‘막장 인생’의 거의 모든 분야를 경험한다.

1945년 말 다시 보스턴으로 간 말콤은 패거리들과 함께, 부유한 백인 주택들을 털다가 이듬해 1월에 체포되어 8년 징역을 선고받고 매사추세츠주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의 자서전을 이 대목까지 읽어보면 동서양에서 나온 어떤 소설에 못지 않게 범죄 경력이 화려하고 다양하다. 나중에 흑인사회뿐 아니라 아프리카 민중운동 진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하나가 된 인물의 과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감옥에서 말콤 엑스의 별명은 ‘사탄’이었다. 그가 종교를 적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옥살이 하면서 만난 ‘빔비’라는 흑인(독학으로 상당한 지식을 쌓은 무신론자)의 권유에 따라 ‘영어통신 코스’를 시작하고 ‘라틴어 통신강좌’까지 받으면서 말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것이 그에게 찾아온 ‘작은 구원’이었다. 그는 ‘게걸스러운’ 독서광이 되어 감방의 불이 꺼진 뒤에도 복도에서 스며드는 불빛으로 새벽까지 책을 읽곤 했다.

1948년에 말콤 엑스에게 생애 최대의 ‘구원’이 찾아온다(이것이 나중에 그가 암살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고 추정되기는 하지만).  그의 형 필버트가‘이슬람 국가’(Nation of Islam, 약칭 NOI)를 소개하는 편지를 보낸 데서 그 구원은 시작되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말콤의 여러 남매 중 손아래인 레지날드는 가장 열성적인 ‘전도사’였다.

“형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담배를 끊으면 감옥에서 나오는 방법을 알려줄께”라는 그의 글을 보고 흥미를 느낀 말콤은 노포크 교도부락에서 옥살이 하던 기간 내내, ‘검은 이슬람교도들’(Black Muslims)의 지도자인 일라이자 무하마드(Elijah Muhammad, 1897~1975)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일라이자 무하마드는 미국 흑인운동사에서 긍정과 부정 양면으로 아주 중요한(나중에 자세히 살펴볼 마틴 루터 킹처럼) 인물이므로 여기서 간략히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조지아주 샌더스빌에서 태어난 그의 원래 이름은 일라이자 풀(Poole)이었다. 그는 말콤 엑스와 그 유명한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원래 이름은 캐시어스 클레이[Cassius Clay], 그리고 루이 패러칸(Louis Farrakanh, 1933년생. 말콤 엑스의 영향을 받아 NOI에 들어가서 그의 부목사로 일하다가 말콤이 탈퇴한 뒤  NOI의 초대 대변인이 됨)의 종교적 스승이자 삶의 지표였다. 그는 침례교 목사의 아들이었으나 성인이 되자 미국 최초의 이슬람 단체에 들어가서 잠시 활동하다가 1934년에 NOI를 창시한 뒤 급격히 교세를 넓혀 강력한 흑인 지도자가 되었다.
1952년 가석방으로 출옥한 말콤 엑스는 디트로이트의 이슬람 제1사원에서 ‘위대한 스승’ 일라이자 무하마드를 만난다.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죄수인 나에게 시간을 내어 편지를 써준 그 위대한 알라신의 사도를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우리 흑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그의 생애를 고통과 희생으로 보낸 사람이라고 내가 들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가 말을 시작하자 나는 그의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말콤 엑스> 상권,    319쪽) .
 
무하마드를 만나서 설교를 듣고 대화를 하면서 말콤은 독실한 무슬림이 되어 성을 ‘엑스’(X)로 바꾼다. “리틀이란 이름을 가진 푸른 눈의 백인 악마가 그의 성을 나의 아버지쪽 선조에게 붙여준 것 대신에” 이슬람 민족의 성으로 엑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엑스는 노예인 흑인이 선조를 모른다는 의미였다.
 
일라이자 무하마드의 각별한 신임을 얻은 말콤은 ‘이슬람 국가’에서, 세속적으로 말하면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는 1953년 6월, 디트로이트에 있는 제1사원 부목사로 임명된 이래 보스턴 제1사원을 개설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한다. 그는 1959년 뉴욕에서 ‘증오가 낳은 증오’라는 제목으로 NOI에 관해 텔레비전 방송을 한 것을 계기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당연히, 미국 주류사회와 보수세력은 ‘백인은 악마’라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말콤을 미국을 전복하려는 ‘불온분자’로 여기게 된다. 연방수사국(FBI)이 그를 도청하고 미행했음은 물론이다.
말콤이 1952년 NOI에 가입했을 때 5백여명에 불과하던 신도가 그가 탈퇴하기 전인 1963년까지 2만5천여명으로 늘어난 데는 그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미국 이슬람운동에서 일라이자 무하마드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말콤이 무하마드와 결별하고 NOI를 떠나는 시간이 온다. 1963년 11월 대통령 케네디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당하자 언론의 논평 요구를 받은 말콤이 ‘자업자득’이라고 대답한 것이 무하마드를 격분시켰다. 무하마드는 말콤에게 6개월 자격정지를 명한다. 결별의 더 결정적인 원인은 무하마드의 간음과 사생아였다. ‘무하마드가 개인 비서들과 간통해서 잇따라 임신하게 했다’는 교단 안의 소문을 믿으려 들지 않던 말콤은 오랜 번민 끝에 당사자들을 만나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청천벽력 같은 충격을 받고 ‘이슬람 국가’를 떠난다. 이밖에도 그가 무하마드와 결별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세계적 스타’가 된 말콤에 대한 무하마드 자신과 교단 간부들의 질시와 모함이었다.

목숨을 바칠 각오로 열중했던 ‘이슬람 민족’ 운동을 떠난 말콤 엑스는 말할 수 없는 고뇌에 빠져 있다가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하지’(순례)를 떠난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여러 인종의 무슬림들과 대화하고 기도하면서 ‘백인은 악마’라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린다.

여기 이 고대의 성지, 아브라함과 마호멧 및 성서에 나오는 그밖의 모든 선지자들의 고향에서 피부색과 종족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보여준 것만큼 진지한 환대와 참된 형제애의 정신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지난 주일 동안 내내 나는 ‘온갖 피부색의 사람들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친절을 목격하고 완전히 말문이 막히고  넋을 잃을 정도였다 (<말콤 엑스> 하   권, 207쪽).

그는 이때부터 수니파(시아파와 함께 이슬람의 양대 교파)로 개종하면서 엘 하지 말리크 엘 샤바즈라는 아랍식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한다.
말콤은 메카 순례 이후 행동반경을 넓혀,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흑인의 단결과 우애, 모든 인종의 평화공존을 강조한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단결기구(Organization of Afro-American Unity, 약칭 OAAU)의 의장으로서 아프리카 단결기구(OAU)와 연대하여 열정적으로  활동한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온다. 1965년 2월 21일 말콤 엑스는 뉴욕 맨해튼의 오듀번 볼룸에서 열린 OAAU의 모임에서 연설하고 있었다.

“(···) 앞줄의 사나이 세 명이 벌떡 일어서서 말콤 엑스를 겨냥하고 일시에 총을 쏘아댔어요. 그것은 마치 총살집행장면 같았어요.”
말콤 엑스는 그를 명중시킨 열여섯 발의 총알 중 첫 알을 맞는 순간 한 손이 가슴 위로 내려졌다. 다음 순간 다른 한 손이 위로 치켜올려졌다. 그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은 총탄에 아스라졌으며 그의 턱수염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는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의 거대한 몸집이 뻣뻣하게 뒤로 넘어지며 의자 둘을 쓰러뜨렸다 (<말콤 엑스> 하권, 351쪽).

미국 경찰은 ‘검은 이슬람교도’ 세 명을 체포했는데, 당연히 ‘1급 살인’으로 사형을 당했어야 마땅한 그들은 20여년 남짓 옥살이를 마치고 풀려났다. 그러나 말콤 엑스의 사후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국가 정보기관이 암살에 간여했으리라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다시 읽으면서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암살당한 백범 김구 선생과 몽양 여운형 선생을 연상했다.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와 자와할랄 네루도 생각났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나는2008년 미국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기기를 은근히 바랐다. 부시를 반드시 눌러야 세계가 훨씬 더 편안해질 텐데, 오바마가 후보가 되면 인종주의자들과 극우보수세력의 암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들 부시가 임기 8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잃게 한 그 많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부시의 길을 따를 가능성이 큰 존 매케인의 당선은 막아야 할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2000년에 앨 고어가, 2004년에 존 켈리가 패배함으로써 미국에는 끔찍한 역사의 퇴행이 나타났다. 한반도에서는 더 앞당겨질 수도 있었던 북한의 개방이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같은 보수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극우에 가까운 보수가 집권하면 그토록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과 세계 양심세력의 기대에 맞게 대통령이 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가 말콤 엑스처럼 무방비 상태로 비극적 최후를 맞지 않고 철통같은 경호를 받으면서 4년(또는 연임한다면 8년) 임기를 무사히 마치기를 바랄 뿐이다.
말콤 엑스가 암살당한 1965년에 오바마는 네 살이었다. 그러니 그가 말콤의 죽음을 알았을 리가 없다.

글쓴이 / 김종철

-전 동아일보사 기자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전 연합뉴스 대표이사 사장
-현 재능대학교 초빙교수
- 평론으로 <상업주의소설론> 등, 저서로 <저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1992)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1995), 역서로 <말콤 엑스>(공역,1978) <산업혁명사><프랑스혁명사>(1982) <인도의 발견> 등

최초입력 : 2009-02-06 19:16:31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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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면죄부 수사, 적당히 덮자는 언론
[아침신문 솎아보기] 김석기 자진사퇴, ‘용산 의혹’ 잠재울까
2009년 02월 10일 (화) 06:48:48 류정민 기자 ( dongack@mediatoday.co.kr)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사건은 비상식적인 수사결과 발표가 시작이었다. 9일 검찰의 ‘용산 참사’ 수사결과 발표를 둘러싼 논란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특공대 진압 과정에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숨을 거둔 사건인데 검찰은 경찰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검찰은 “아쉬운 점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권력의 힘을 믿고 시민의 의문과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검찰의 이러한 수사결과 발표는 언론이 예상했던 결과였다. 언론이 예상한 다음 순서는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는 결정이다. 언론 예상대로 흘러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누구도 납득시키기 어려운 수사결과를 내놓았지만 언론의 표정은 엇갈렸다. 날 선 비판으로 검찰의 수사결과를 비판한 언론도 있었지만 시민의 분노를 잠재우는데 초점을 맞춘 언론도 있었다.

다음은 10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용산참사' 경찰에 면죄부>
-국민일보 <김석기 내정자 오늘 사퇴>
-동아일보 <김석기 내정자 오늘 자진사퇴>
-서울신문 <실익없는 ‘성장률 공표'>
-세계일보 <“용산참사 농성자 공동책임 경찰 특공대 투입작전 적법”>
-조선일보 <경찰은 살리고, 김석기 떠나고>
-중앙일보 <김석기 청장 오늘 사퇴>
-한겨레 <철거민 20명 기소…검찰은 ‘혐의없음’>
-한국일보 <검, 경찰에 면죄부 줬다>

   
  ▲ 한국일보 2월10일자 1면.  
 

언론은 용산 참사와 관련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와 여권 지도부의 사태 수습 방안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결과는 언론이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일보는 1면 <검, 경찰에 면죄부 줬다>라는 기사에서 “‘용산 참사' 수사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검찰은 참사로 이어진 화재의 원인을 농상자들이 투척한 시너와 화염병으로 결론짓고,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에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3면 <‘합동작전' 용역 처벌·경찰 무혐의…‘기묘한 결론'>이라는 기사에서 “9일 발표된 ‘용산 참사' 경찰 수사 결과는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라는 당초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면서 “수사 막판에 불거진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의 합동 작전은 용역직원은 형사 처벌하고 이를 보호해 준 경찰에겐 책임을 묻지 않는 ‘이상한 결론'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검찰 면죄부 수사 예상했던 언론

   
  ▲ 한겨레 2월10일자 1면  
 
한겨레 1면 <철거민 20명 기소…검찰은 ‘혐의없음'>이라는 기사에서 “경찰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처벌은 있어도, 철거민 다섯 사람의 죽음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면서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본부장 정병두 차장)는 9일 오전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농성자 20명과 용역·철거업체 직원 7명 등 27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에게 법적 책임은 없는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의문을 해소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언론의 공통된 평가이다. 경찰 면죄부에 초점을 두다 보니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3면 <검 “진압 아쉬운 점 있다”면서 경찰 책임 안물어>라는 기사에서 “검찰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고 에둘러 표현했듯이 경찰의 진압작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명백한 잘못도 밝혀졌다. 그러나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4면 <철거민 쪽엔 ‘과학수사’…경찰…용역 쪽엔 ‘진술 의존'>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수사기간 내내 철거민 쪽에 불리한 정황과 증거들은 선제적으로 내놓거나 이를 입증하려고 철저한 과학수사를 벌였다. 반면, 검찰과 용역업체 쪽에 불리한 내용은 정치권과 언론, 진상조사단이 의혹과 증거를 제기한 뒤에야 확인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김석기 자진사퇴 카드, 여론 잠재울까

   
  ▲ 조선일보 2월10일자 3면.  
 
국민일보는 4면 <경찰 준비덜된 진압작전 정당?>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모든 경찰 작전·지휘 라인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진압 장비 등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전을 감행한 것과 경찰 소방 호스로 물을 쏜 철거 용역업체 직원만 처벌하고, 이를 묵인한 경찰에는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편파 수사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권은 김석기 내정자 자진사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경찰은 법적 책임이 없다면서 경찰 수장이 물러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론의 반발을 무마할 카드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조선일보는 3면 <그냥 덮어두기엔…‘김석기 불씨' 너무 뜨거웠다>는 기사에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자진사퇴하기로 함에 따라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으로 촉발된 정국의 불안이 새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여권이 끝내 김 청장 내정자를 안고 갔을 경우 예상됐던 용산사건의 폭발성은 크게 감소하게 됐다”고 전망했다.

중앙일보 "사퇴하지 않으면 대통령에게 부담 된다는 논리"

   
  ▲ 중앙일보 2월10일자 3면.  
 
중앙일보는 3면 <법적 면죄부 받았지만…“국정운영 짐 된다” 자진사퇴 급선회>라는 기사에서 “조기 사퇴론은 ‘비록 법적인 책임은 없더라도 김 후보자가 도덕적 책임이나 포괄적 관리책임은 져야 한다. 사퇴하지 않고 버티면 이제 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논리였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3면 <법적 책임 면죄부로 ‘퇴로 명분'>이라는 기사에서 “김 내정자의 자진 사퇴는 사실 용산 참사 발생 때부터 예견돼왔다”면서 “사퇴를 하지 않고 버틸 경우 여론 및 야당의 거센 반발로 인해 자칫 ‘제2의 촛불' 사태가 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3면 <청 “경찰 혐의 벗었으니 명예퇴진 적기” 판단한 듯>이라는 기사에서 “용산 참사 문제는 사건 발생 20일 만에 일단 중요한 고비는 넘었다”고 보도했다. 김석기 내정자 사퇴로 조선일보가 예상한 것처럼 용산 사건의 폭발성은 감소하고, 동아일보가 예상한 것처럼 중요한 고비는 넘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서울신문 "검찰 수사결과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

   
  ▲ 서울신문 2월10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철거민 유죄, 경찰 무죄로 결론난 용산수사>라는 사설에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면서 “공권력에 의한 시위진압 과정의 사망은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생존을 위한 철거민들의 저항은 범죄 행위로 내몬 데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본질적인 의문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용산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은 처음부터 수사의 초점과 거리가 멀었다. 언론이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면 그때 수사에 나서는 소극적인 모습은 검찰의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뻔한 수사결과를 발표해놓고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적절한 태도일까. 검찰의 이러한 모습이 가능한 이유는 일부 언론이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측면 지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용산 참사, 수사결과 넘어 수습의 지혜 모을 때" 

   
  ▲ 동아일보 2월10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용산 참사, 수사결과 넘어 수습의 지혜 모을 때>라는 사설에서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해선 안 된다. 민주당의 특검 수사 요구는 정략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 할 일은 철거민과 영세 상인들의 피해를 줄일 합리적인 재개발 정책을 마련해 제2, 제3의 용산 사건을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용산참사를 전화위복 계기 삼아야>라는 사설에서 “검찰 발표로 용산 참사에 대한 진상은 대부분 드러났다. 하지만 깔끔한 매듭은 아니었다”면서 “다행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철거민 문제를 포함한 재개발 사업 전반에 걸쳐 법과 제도 정비를 강조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세입자 지위 회복, 분쟁 조정 공적기구 설치 등 세입자 배려 정책을 약속하고 있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언론은 경찰 책임론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오히려 경찰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앙일보는 <눈물과 불법 폭력, 악순환 고리를 끊자>라는 사설에서 “이번 사태는 불법·폭력시위를 하면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보고, 그 결과 불법이 재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대 전환점이 돼야 한다. 경찰이 소신을 갖고 법질서를 수호하게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이번 수사는 야만의 극치…특검 도입 불가피"

   
  ▲ 경향신문 2월10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 <‘용산' 책임은 철거민·경찰보다 정부·국회에 물어야>라는 사설에서 “경찰의 진압작전을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으로 보고 그 책임을 경찰에 물을 순 없다. 물론 경찰의 진압작전이 서툴렀던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나 국회, 지자체 등이 나서 재개발 조합과 세입자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주는 절차나 제도를 만들었다면 이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이 김석기 자진사퇴를 내세우고, 일부 언론이 적당히 덮자는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지만 용산 참사 논란이 쉽게 가라앉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겨레는 <이런 수사결과를 믿으라는 건가>라는 사설에서 “정확한 진상규명도, 중립적인 자세도, 법과 원칙도 찾을 길 없다. 대신 정치적 이해타산만 두드러진다”면서 “(대통령의 태도는) 국민 목숨을 아랑곳 않는 오만과 독선이고, ‘야만적인 법질서 의식'”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용산 참사’ 수사결과, 기만이고 야만이다>라는 사설에서 “우리는 이번 수사가 국민 기만이고, 야만의 극치라고 본다”면서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검사제 도입이 불가피해진 까닭”이라고 주장했다.

최초입력 : 2009-02-10 06:48:48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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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택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의혹백화점'
[아침신문 솎아보기]9일 '용산참사' 검찰 수사 결과 발표…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할 듯
2009년 02월 09일 (월) 07:39:15 김수정 기자 ( rubisujeong@mediatoday.co.kr)

   
   
 
‘용산 철거민 참사’를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본부장 정병두 1차장)는 9일 오전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 때 경찰 진압 방식의 적절성과, 망루를 향해 물포를 쏘거나 남일당빌딩 안에서 불을 피워 철거민들에게 연기를 올려보낸 용역업체 직원들에 대한 처벌 여부도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진압작전을 최종 승인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들은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한겨레 1면 <용산 진압 ‘경찰간부’ 처벌 않기로>).

오늘(9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위장 증여 △위장 전입 △논물 표절 등의 의혹이 제기되는데다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자질 논란까지 일고 있어 현 후보자 국회 인준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 지도부가 ‘성폭력 파문’과 관련해 ‘총사퇴’로 가닥을 잡았다. 이석행 위원장을 제외한 민주노총 지도부 전원이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총사퇴 여부와는 별도로 민주노총은 피해자측이 주장한 사건 은폐 및 허위 진술 강요 등의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위원회를 다시 꾸려 관련자들에 대한 재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다음은 9일자 주요 아침신문들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강만수, 청보고땐 “마이너스 성장” 발표땐 “3%” 정부, 경제 성장률 ‘왜곡’ 파문>
국민일보 <서민경제 붕괴, 생계지원·실업급여 신청 급증하는데 신빈곤층 대책 두달째 헛바퀴>
동아일보 <한전 ‘공개경쟁 인사실험’의 끝은 구조조정 간부 41명 첫 무보직 처분 1년간 지속땐 해고 가능>
서울신문 <지자체, 경기부양 풀 돈이 없다>
세계일보 <“급수시간 놓칠라” 밤새고 공원 연못물까지 식수로>
조선일보 <3500억 양양 99일째 승객 ‘제로’>
중앙일보 <중앙일보가 ‘일자리 찾기’ 도와 드립니다>
한겨레 <현인택, 17살·군복무때 주택 매입>
한국일보 <‘버스정류장 치안’ 점수로 따져보니 군포 -19, 압구정 +9>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의혹백화점’



부동산 편법 증여를 비롯해 위장 전입, 허위 논문 게재, 임대소득 탈루까지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또한 남북문제 비전문가라는 태생적 한계와 친미·대북 강경론의 성향, 과거 대북 강경 발언 등을 감안할 때 그가 꼬인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인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 2월9일자 경향신문 1면  
 
경향은 이날 1면 <“현인택, 3각매매로 땅 취득”> 기사에서 “현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2006년 제주시 성일운수 토지를 증여세 납부 회피를 위해 ‘특수관계인’을 동원한 ‘3각 매매’ 방식으로 취득했다는 주장이 8일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경향은 민주당 박선숙 의원 보도 자료를 인용해 “현 후보자 부친 소유였던 성일운수의 대지가 현 후보자에게 팔린 것은 증여를 피하기 위한 변칙매매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 후보자의 부친은 2006년 2월 중순 성일운수를 고모씨에게 넘겼고, 현 후보자와 동생은 다음달 2일 각각 회사 땅 165㎡와 450.7㎡를 사들였다. ‘부친→고씨→현 후보자 형제’로 이어지는 ‘3각 매매’라는 주장이다. 박 의원은 “현 후보자가 2000년 5월 모친으로부터 성일운수 땅 일부를 증여받았다”며 “증여세는 10년 이내에 추가 증여시 누진세율이 적용돼 세율이 낮은 매매를 통한 증여를 선택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 2월9일자 한겨레 1면  
 
한겨레는 이날 1면 머리기사 <현인택, 17살·군복무때 주택 매입> 기사를 통해 “미성년과 군복무 시절 자기 명의로 주택을 사고 판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현 후보자는 17살 때인 1970년 제주시 용담동에 자기 명의로 집을 샀다 2005년 팔았고, 같은 해 제주 서귀포에 어머니, 형과 함께 3분의1지분으로 주택을 사들여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 단독주택(2002년 매각)은 군복무 시절인 79년에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 후보는 78년 7월부터 80년 10월까지 군생활을 했으며 이 집을 살 때도 군에 있었다.

또 현 후보자가 자기표절 논문 등 부풀린 연구실적으로 2006년 2단계 BK21(두뇌한국21) 사업을 신청해 예산을 부당 수령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한겨레는 이날 3면 <위장 증여·위장 전입·논문 표절 ‘현인택 의혹백화점’> 기사에서 “현 내정자가 2003년 연구 업적으로 등록한 ‘제2의 북한 핵 위기:합의냐 파국이냐’(<국제관계연구>)의 영문 초록을 5장에 걸쳐 그대로 옮긴 ‘Analysis of the Second North Korean Nuclear Crisis’(전략연구 제35호)를 2005년 연구 업적으로 등록해 자기 표절했다”고 지적했다.

   
  ▲ 2월9일자 경향신문 5면  
 
경향은 5면 <‘북한=주적’ 강경 대북관…더 커진 ‘적격성’ 우려>에서 무엇보다 그는 남북관계 전문가가 아니라며 “현 후보자는 미국 UCLA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이후 국제정치 및 안보관련 분야를 연구해 왔다. 주요 저서도 <신국가안보전략의 모색> <한국의 방위비> <유럽통합과 신유럽 안보질서> 등”이라고 말했다. 또한 학문적 성향도 북한이 적의를 보이는 친미·대북 강경으로 이는 논문·칼럼 등에서 드러난다. 그는 1997년 ‘북한의 대외정책과 체제보존’이란 논문에서 “체제의 중핵을 이루는 오직 일부의 사람들만이 연명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아사 직전에 있는 체제는 유형이 어떠하든 간에 결국은 대명천지에 같이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 <자격 의심스러운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서 “통일부 장관은 명확한 통일의지와 역량, 고위 공직자로서 높은 도덕성을 겸비해야 하지만 현 후보자는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다”며 “그러잖아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지금,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통일부 장관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 할 듯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 간부 성폭력·은폐 사건과 관련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9일 총사퇴할 것으로 보인다. 현 집행부에서는 이석행 위원장을 제외한 임원 전원이 사퇴할 것으로 전해졌다.

   
  ▲ 2월9일자 국민일보 1면  
 
경향은 1면 <권력화된 민주노총 위기 자초>에서 “민주노총은 9일 중앙집행위원회의를 거쳐 비상대책위 체제에 돌입하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사태 수습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이번 추문으로 민주노총은 물론 노동운동 전체가 도덕성 위기에 휩싸이며 국민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법제화 노사정위 합의안 부결(1998년), 발전 파업에 대한 노정 합의안 책임(2002년), 수석부위원장의 금품수수(2005년) 등으로 3차례 지도부가 총사퇴한 바 있다.

한겨레는 11면 <상폭력 대처 미흡…집행부 ‘여론 뭇매’>에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총사퇴하게 되면 당분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온건파로 분류됐던 이석행 위원장 지도부가 물러남에 따라 비대위에서는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점쳐진다”고 전망했다.

조선은 8면 <강경파 목소리 커져… 노사관계 험로 예상>을 통해 “민주노총 역사에서 비대위는 세 번 구성됐는데 매번 비대위가 구성될 때마다 민주노총의 투쟁 노선은 더 강경한 쪽으로 선회했고, 이 때문에 노·사, 노·정관계는 악화됐었다”고 말했다.

   
  ▲ 2월9일자 조선일보 8면  
 
조선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글을 보도한 <“섹스노총” “강호순보다 무서워”… 안팎서 비난>에서 “'지하드'라는 ID의 네티즌은 "성폭행범 강호순과 무엇이 다르냐"고 했고, ID '여성조합원'은 "강호순보다 민노총이 더 무서워"라고 썼다”고 기사화했다. 하지만 네티즌이 ‘섹스노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과 별개로, 이 단어는 ‘성폭력’을 ‘섹스’로 치환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이를 기사화한 것역시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한나라당 ‘사형’, ‘감형없는 종신형’ 추진

한나라당이 사형 확정 판결에 대한 사형 집행 방침을 사실상 ‘당론’으로 정했다. 또 정부와 한나라당은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같은 흉악범에 대해 사형과는 별도로 종신형을 선고하는 방한을 추진키로 했다.

   
  ▲ 2월9일자 경향신문 2면  
 
경향 2면 <한나라 “사형 집행” 공론화>에서 홍준표 원내대표는 “확정 판결자에 대한 사형집행은 해야 한다”며 “원내 대표단의 의견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그간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에 대한 사회적 합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의 경우 형법상 사형제를 규정하고 있지만, 사형제 존폐를 놓고 사회적 찬·반론이 제기되면서 판결은 내리되 집행은 하지 않아왔다. 이 때문에 국제사면기구 등이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해 왔다. 미집행 사형수는 1997년 이후 현재까지 모두 58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 2월9일자 서울신문 2면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감형없는 종신형’ 도입도 추진할 방침이다. 서울 2면 <흉악범에 감형없는 종신형> 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오는 12일 법무부, 행정안전부, 경찰청과 당정협의를 통해 감형이나 가석방, 사면이 불가능한 종신형을 추진해 흉악범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번에 추진키로 한 종신형은 무기형과 다소 비슷한 개념이지만 감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무기형은 수형자가 개전의 정을 보이거나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보이면 일부 감형해 주기도 하지만 종신형은 아예 감형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 2월9일자 서울신문 사설  
 
서울은 사설 <흉악범에 절대적 종신형 검토할 만하다>에서 “우리는 이 조치가 사회적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서울은 “범죄자들 모두가 죗값을 치르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친 뒤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에 복귀해 활동한다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재범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절대적 종신형이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 끔찍한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085
최초입력 : 2009-02-09 07:39:15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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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검찰수사 본격 '도마'
[아침신문 솎아보기]조중동은 검찰 발표 그대로 전달
2009년 02월 06일 (금) 08:54:37 권경성 기자 ( ficciones@mediatoday.co.kr)

   
   
 
'용산 참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정병두 본부장)는 5일 용역업체의 경찰 작전 동원 의혹뿐 아니라 서울 용산4구역의 농성 철거민들에 대한 불법행위가 추가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 당초 6일로 예정됐던 수사결과 발표도 9일로 연기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용산 참사 현장에서 철거 용역업체 직원이 물대포를 쏘는 채증사진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진보 성향의 신문들은 6일자 지면에서 이를 추궁했지만 보수 신문들은 의혹보다 검찰의 발표 내용에 더 주목하는 모습이다.

다음은 6일자 주요 아침신문들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검찰, 용역 동원 알고 있었다">
국민일보 <"헌 봉고차 때문에 지원대상서 빠져…/ 우리 엄마 눈물 안 나오게 해주세요">
동아일보 <자기소개-학업계획서 보고 뽑았다>
서울신문 <'한국의 닌텐도' 나오려면>
세계일보 <정보공개 '후진'…알권리도 '후퇴'>
조선일보 <'금융 보호주의'를 깨라>
중앙일보 <"낡은 봉고차 때문에 거리 나앉을 판">
한겨레 <검·경, 용산 '추모집회'도 강경대처>
한국일보 <"부실징후 대기업 자구안 내라">

검찰이 용산 참사 현장에서 철거 용역업체 직원이 물대포를 쏘는 채증사진을 증거 자료로 수사 초기부터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에서 이렇게 전하는 한편 이 때문에 "검찰이 용역업체와 경찰 간 합동 진압작전을 펼친 의혹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수사 막판에 새로운 사실이 잇따라 제기되자 당초 6일로 예정됐던 수사결과 발표를 9일로 연기했다.

   
  ▲ 경향신문 2월6일자 1면.  
 
경향신문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5일 "용산 참사 당시 경찰이 채증한 사진 중에는 소방호스로 물대포를 쏘는 용역업체 직원의 모습이 정확히 담겨 있다"면서 사진 4장을 공개했다. 이 의원은 "사진은 수사 초기 검찰에 증거자료로 제출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검찰은 MBC 에서 동영상을 공개하기 이전에도 충분히 증거를 입수하고 있었고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있었다"며 "검찰의 주장은 모두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동안 검찰은 체포된 농성자들로부터 용역업체 직원이 물대포를 쐈다는 진술이 있었지만 누군지 특정할 수 없어 수사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수사 막판에 새로운 의혹이 속속 제기되자 검찰은 보완 수사 착수 하루 만에 용역 직원이 경찰 작전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용역 직원이 사제 방패를 들고 농성 건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또 용역 직원들이 건물 내부에서 고의로 불을 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신문은 "수사 초기부터 제기됐던 의혹들을 수사결과 발표를 목전에 두고 서둘러 수사하는 것은 면피성 수사에 불과하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국민들이 수긍할지 의문"이란 민변 송호창 변호사의 말을 인용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원내정책회의에서 한 "면피용 짜맞추기 수사결과를 내놓는다면 특검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도 전했다.

   
  ▲ 한겨레 2월6일자 3면.  
 
한겨레도 3면 통단 머리기사 <검찰, 용역동원 경찰 채증사진 확보하고도 묵살>을 통해 "'용산 철거민 참사'를 수사하는 검찰이 용역업체 직원들의 개입을 입증하는 경찰 채증 자료를 확보하고도 이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편파 수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며 같은 소식을 전했다.

이와 함께 신문은 용역업체뿐 아니라 소방당국도 진압 과정에 부적절하게 동원됐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참사 하루 전인 19일 오전부터 현장을 지켜봤다는 주민 이아무개(46)씨의 말을 인용해서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물포) 설치는 경찰이 지시했지만 수압이 낮아서 못 쏘고 소방관이 수압을 높여준 뒤 용역직원이 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이 신문은 1면 머리기사에서 "검찰과 경찰 등 공안당국이 '용산 철거민 참사' 이후 진행되고 있는 추모대회 등에 강경대응을 예고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단체들은 '납득이 가지 않는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여론까지 틀어막겠다는 폭압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 동아일보 2월6일자 A12면.  
 
한편 보수 신문들은 제기된 의혹보다는 검찰의 발표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동아일보는 A12면에서 2단 크기 기사 <용산참사 수사 발표 9일로 연기>로 같은 소식을 간단하게 보도했다. "사고 발생 전날인 지난달 19일 재개발 철거용역업체 직원이 철거민들의 망루 제작을 방해하기 위해 옆 건물 옥상에서 경찰 요청으로 설치돼 있던 소방호스로 물을 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추가 조사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라는 배경 설명과 함께다.

신문은 점거농성 진압 과정에서 불이 났을 때 망루를 탈출한 농성자 가운데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 사람이 있다는 의혹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검찰이 결론을 내렸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이 기사 바로 위엔 3단 크기의 <전철련, 경찰관 감금 집단 폭행> 기사가 배치됐다. '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 유족과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 관계자들이 경찰관을 감금하고 폭행하는 일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2월6일자 A8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검찰의 발표 내용으로 제목을 뽑았다. 조선일보는 A8면 기사 <"물뿌리던 용역, 진압 당시엔 철수">에서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8대 의혹'을 발표하고, 검찰이 이에 반박하는 등 '편파수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범대위가 경찰의 무전교신 내용을 근거로 용역업체 동원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검찰이 "용역업체 직원이 아니라 경찰특공대원들이 건물 3층 장애물 제거작업을 하고 있는 동영상, 진압 당시 '용역업체는 철수했다'는 경찰 무선 교신내용을 확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반박이 표제가 됐다.

중앙일보의 경우 검찰이 내린 용산 사건 결론이 제목이다. 신문은 10면 머리기사 <"농성자들 시너 뿌린 뒤 화염병 던져 불">에서 "검찰은 사건의 원인인 화재는 농성자들이 시너를 뿌린 뒤 화염병을 던져 일어난 것으로 결론 냈다. 소방대원 진술, 무전 교신 내용, 경찰이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확인됐다는 것"이라며 "검찰은 농성자 20여 명을 기소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또 "경찰의 과잉 진압 의혹과 관련해 작전에 투입됐던 경찰관들은 무혐의 처분키로 했다"고 전했다. 용역업체 직원의 물포 발사 의혹과 관련해선 검찰이 추가로 수사할 방침이지만 검찰의 1차 조사 5결과 용역업체 직원 정모씨가 당시 물포가 아니라 소화전을 쏜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 경향신문 2월6일자 10면.  
 
'용산 철거민 참사' 보도를 놓고 진보와 우익 단체들이 KBS·MBC 양 방송사를 상대로 각각 엇갈린 규탄 집회를 열었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10면 머리기사 <진보는 KBS로, 보수는 MBC로>에서다.

신문에 따르면 400여개 진보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생민주국민회의'는 5일 오후 1시30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가 군포 연쇄살인사건에 집중하면서 철거민 살인진압에 대해서는 검찰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전하고 있다"며 "검찰의 면죄부 수사를 제대로 보도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500여개 보수·우익단체가 모인 'MBC 방송허가취소 범국민운동'은 이날 오후 2시 1500명(경찰 추산 500명)이 모인 가운데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광우병 조작 선동에 이어 철거민의 불법폭력을 옹호하는 MBC에 대한 방송허가를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범국민운동은 지난 1월15일 MBC의 촛불 보도와 방송법 개정 반대파업을 규탄하며 발족한 이후 MBC 방송허가취소 운동을 벌여왔다.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위(위원장 정병국 의원)가 5일 국회 헌정 기념관에서 '공영방송의 바람직한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중앙일보는 8면 머리기사 <"공영방송 감독할 별도 위원회 설치를">을 통해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신문은 "토론회에서는 문화방송(MBC)을 공영방송으로 볼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성우 단국대 교수(법학)는 발제를 통해 "공영방송은 시청료라는 공적 재원에 의해 공적 영역을 담당해야 한다는 원칙하에서 법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공영방송은 광고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사실상 민영방송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며 "이는 민영방송 사업의 성장에도 걸림돌일 뿐 아니라 (공영방송의)공적 프로그램 공급 기능에도 지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MBC는 소유 구조는 공적이지만 재원 구조가 민영적이라 공영방송법의 범위 안에 포함할지 제외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방송통신위원회와 별도로 독립적인 공영방송위원회를 설치해 공영방송을 감독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공영과 민영의 분류 기준은 재원 구조가 아닌 소유 구조"라며 "재원 구조가 민영적이라는 이유로 MBC를 다른 방송사와 분리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참석자들이 방송법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만 부각되는 데 아쉬움을 나타냈다고도 전했다. 사회를 맡은 이창근 광운대 교수(미디어영상학)는 "이 이슈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 같다"며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아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 교수도 "그동안 이 문제에 관해 공개적인 발제를 사양해 왔다"며 "공영방송에 있어서만큼은 원칙적인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앙일보 2월6일자 8면.  
 
동아일보도 A10면에 이 토론회 기사를 실었다. <"독립적 공영방송기구 설치 통해 상업주의 극복해야">이란 제목을 달았다. 발제를 맡은 단국대 지성우 교수가 "현행법상 공영방송의 이사 임명 과정에 대통령 소속기관이 관여해 정파성이 높은 인물이 선정될 수 있다"며 "정치적·재정적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영방송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비중 있게 전한 셈이다. 한나라당 정병국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장은 이 토론회에서 "KBS와 MBC는 정부가 절대 주주여서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지만 내용은 모두 상업방송"이라며 "다채널 다매체 시대가 되면 상업주의로 인해 공영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자, 전·현직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정치권에 한목소리로 미디어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강동순 전 방송위원 등 137명은 이날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디어법 개정을 촉구하는 지식인 100인 선언’을 발표했다. 중앙일보(8면 <"현 지상파 체제는 언론통폐합 산물…미디어법 개정해 민주화 완성해야">)와 동아일보(A10면 <"미디어 관계법 조속 개정을">) 등이 이 소식을 전했다.

선언에는 금창태 전 중앙일보 대표이사, 류근일 전 조선일보 고문, 봉두완 한미클럽 회장, 이한수 전 서울신문 사장, 현소환 전 YTN 사장, 김은구 전 KBS아트비전 사장,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이헌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대표 등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 중앙일보 2월6일자 1면.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신빈곤층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지원을 못 받는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긴급지원 대상자 선정 기준을 완화했지만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직된 제도 때문에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300만 명(추정치)이 넘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식 가정(4인 가구)의 소득이 월 236만 원이 넘으면 부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도록 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봤다. 요즘 불황 탓에 먹고 살기 힘든 자식이 부양하지 않는데도 부양능력이 있다는 기준을 내세워 부모에게 지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정에만 얽매이는 행정 관행도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 신문은 인천 남동구의 원룸 지하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김아무개(10)양이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현실과 괴리된 경직된 제도의 사례로 들었다. 이 대통령은 5일 경기도 안양 보건복지 129 콜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이 편지를 소개했다. 김양과 김양의 엄마는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2만 원인 원룸의 월세를 5개월째 못 내고 있어 나가야 될 처지다. 하지만 교회 차량 봉사를 하면서 받은 1999년식 봉고차 한 대 때문에 '한부모 가족' 지원 대상 선정에서 탈락했다. 이 사연은 국민일보 1면 머리기사로도 소개됐다.

최초입력 : 2009-02-06 08:54:37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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